이슈앤/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김성희)은 다원예술 2026 《탐정의 시간》을 4월 1일(수)부터 12월 6일(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최한다.
<MMCA 다원예술>은 2018년부터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며 미술관의 역할과 예술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다학제·융복합 프로그램이다.
다원예술 2026 《탐정의 시간》은 지난 2년간 다뤄온 ‘공간’에 대한 탐구를 ‘시간’의 차원으로 전환하며 질문의 깊이를 더한다.
2024년 《우주 엘리베이터》가 수직적 상상력과 지구 밖의 감각을, 2025년 《숲》이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는 생태적 공간을 다뤘다면, 2026년은 이러한 공간들을 관통하는 시간의 층위를 이야기한다.
'탐정의 시간'은 2026-27년 2년에 걸쳐 전개되는 장기 프로젝트다. 올해 열리는 1부는 탐정의 끈질긴 ‘신체적 관찰과 추적’에 집중하며 2027년에 이어질 2부는 ‘지연된 이탈과 느린 탈주’를 주제어로 인간의 갈망과 도달할 수 없음을 다룰 예정이다.
‘탐정’은 AI시대에 예술이 제안하는 인간 고유의 태도이다. AI가 방대한 데이터로 즉각적인 답변과 최적화를 추구한다면, 탐정은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탐정은 AI의 기계적 연산 대신 끈질긴 관찰, 빠른 정답 대신 느린 시간, 효율성 대신 비효율과 인내를 선택하며 데이터나 결론으로 환원될 수 없는 갈망과 시간 속에 머문다.
탐정은 고전적 탐정과는 다르게 고정된 진리를 찾기보다는 집요한 관찰 과정에서 스스로 변화하고 때로는 실패하는 존재다. 탐정의 관찰은 시각과 논리의 행위인 동시에 철저히 신체와 시간의 행위로서 감정 소비, 피로, 육체적 노화 등을 거치며 누군가를 오랫동안 지켜보는 일이다. 이는 탈신체적인 AI의 즉각 연산과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의 시간’으로 표현된다.
다원예술 2026에서는 예술가와 아이들이 이러한 탐정의 전형이다. 예술가는 관습적 논리와 효율을 거부하고 느린 관찰을 통해 세계를 재구성한다. 아이들 역시 목적 없이 세상을 응시하고, 어른들이 무시하는 사소한 것에 몰두하며, 시간의 흐름을 다르게 경험한다.
특히 아이들의 시간은 아직 완전히 굳지 않은 지층처럼 외부 영향을 받으면서도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모습으로 솟아오르는 ‘가소성(plasticity)’을 보여준다. 이들의 집요한 관찰은 고정된 지층과 질서를 흔들고, 미술관을 떠난 이후에도 관객의 사유 속에서 재구성되며 시간을 재생산한다. 다원예술 2026은 예술가와 아이들을 탐정으로 호명하며, 관객들에게 이들의 집요한 탐색을 통해 심원한 시간을 경험하는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월별 프로그램
다원예술 2026은 4월부터 11월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월별로 순차 공개한다.
▲4월에는 동시대를 대표하는 전자음악 작곡가 료지 이케다(Ryoji Ikeda)와 현대음악 공연단체인 앙상블 모데른(Ensemble Modern)이 협업한 <현악기를 위한 음악>을 개막한다. 30년간 전자음악과 디지털 작업에 집중한 이케다가 수학적 정밀성을 어쿠스틱으로 번역한 도전적인 작업으로, 4월 1일(수) 공연 이후 료지 이케다의 아티스트 토크가 진행된다.
▲5월에는 캐나다의 참여형 퍼포먼스 단체 마말리안 다이빙 리플렉스(Mammalian Diving Reflex)가
<아이들의 헤어컷>을 선보인다. 8~12세 어린이들이 마말리안 다이빙 리플렉스와 브랜드 차홍의 헤어 아티스트로부터 워크숍과 전문교육을 받은 뒤 미술관 마당에서 대중에게 무료로 이발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젝트다. 아이가 성인을 관찰하고 미용을 제공하면서 전통적 권력 관계를 뒤집는 유쾌한 실험을 시도한다.
▲7월에는 바르셀로나 기반 연극 듀오 엘 콘데 데 토레필(El Conde de Torrefiel)의 <호수의 빛>이 무대에 오른다. 2036년을 배경으로 인공지능이 만든 오페라의 초연 등 4편의 서로 다른 시공간이 중첩되고 시각적으로 겹치는 작업을 통해 현대사회의 삶과 예술을 다룬다.
▲9월에는 네덜란드 작가 3명(리타 후프와이크, 살로메 무이, 샘 쇼이어만)과 한국 작가 2명(신서, 위성희)이 참여하는 《MMCA 다원예술 쇼케이스 서울》이 개최된다. 이 세 명의 네덜란드 작가는 광주비엔날레 네덜란드 파빌리온에 참여하면서 서울에서의 퍼포먼스를 설치와 퍼포먼스 그리고 워크숍 등으로 확장한다.
▲10월 박민희의 신작 <내청內聽의 무대(가제)>는 소리와 신체로 쓴 탐정의 보고서라고 말할 수 있다. 단어와 음절에 깃든 공간을 다 표현하려는 가곡의 시간 감각은 짧은 구절을 반복하는 시대와 어긋나 있다. 이번 작업은 외부를 위한 빠른 노래가 아닌, 부르는 자와 듣는 자의 내부의 미세한 소리와 마음의 흔적을 듣고자 하는 탐정의 경청이다.
▲12월에는 주로 영상매체를 활용해 ‘장소’에 얽힌 기억과 권력의 구조를 탐구하는 정여름의 첫 공연을 선보인다. 신작 <목교木橋(가제)>는 일본의 연쇄 살인범이자 작가였던 나가야마 노리오(1949~1997, Nagayama Norio)가 쓴 텍스트와 주체성 변화를 관찰하며 그가 사용한 ‘인칭’의 변화를 집요하게 추적하며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해부한다.
▲집요한 관찰과 추적의 미학을 독특한 시간감각으로 보여주는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미행(Following)>은 2027년에 예정된 2부 ‘지연된 이탈과 느린 탈주’로 나아가는 가교가 된다. 이 영화는 어떤 예술가가 행하는 무목적적인 관찰과 추적이 어떻게 대상의 세계에 개입하고 관찰자 자신을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준다.
‘프로덕션 하우스’ 역할 강화 및 지역동행
MMCA 다원예술은 완성작 초청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와 함께 작업을 구상·제작의뢰하는 ‘프로덕션 하우스(Production House)’ 역할을 수행하며 한국 다원예술 생태계 확장에 기여하고 있다.
2025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부산현대미술관과 공동제작한 임고은 <그림자-숲>은 네덜란드 코르조(Korzo) 극장 등 여러 무대에 초대됐다. 2021년 다원예술 《멀티버스》에서 위촉·제작한 후니다 킴 <디코딩 되는 랜드스케이프> 시리즈는 2025년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특별언급상을 수상하였고, 그 발전작을 올해 9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에서 전시할 예정이다.
특히 《MMCA 다원예술 쇼케이스》는 해외 유수의 축제·전시와 협업하여 한국 작업을 진출시키고 있다. 지난해 기획한 쇼케이스가 올해 교토실험축제(김강현, 이민진, 박민희, 2026년 10월)에서 확대‧선보이고, 올해는 네덜란드 기획자 콜렉티브와 공동기획하여 한국 동시대 예술의 국제적 확산을 가속화한다.
오는 9월 서울에서 한국·네덜란드 젊은 작가 쇼케이스를 개최하고, 이를 광주비엔날레 네덜란드 파빌리온(2026년 9~11월)에서도 선보일 예정이다. 이는 내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스프링페스티벌(Spring Performing Arts Festival Utrecht)에서 한국 작가를 소개하는 순회 프로그램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 같은 프로덕션 하우스의 역할은 올해부터 <MMCA 지역동행: 다원예술>의 형태로 경남도립미술관 등 지역 기관과도 협업하여 보다 확산될 것이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탐정의 시간》은 AI시대에 인간 고유의 시간성과 신체적 관찰 행위에 대한 미학적 논의와 경험을 관객과 공유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세계적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한국 동시대 예술의 국제적 위상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슈앤 = 전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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